자본주의 게임

 

지난 수십년간 금리가 낮아져 온 것은 자본주의라는 게임에 고인물이 많아져서 그렇다.

• 초보는 포션을 먹으며 약한 몬스터를 잡아서 약간의 경험치와 약간의 골드를 얻지만
• 고인물은 고가의 피흡세팅을 갖추고 강한 몬스터를 편하게 잡아서 많은 경험치와 많은 골드를 얻는다. 포션이 필요없으니 포션살 돈도 아끼게 된다.

 

고인물은 그 게임 시스템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장 사기적인 장비옵션과 스킬들의 조합을 연구하고 찾아낸다. 대표적으로 Path of Exile 이 그렇다.

<개사기 세팅..>

 

하지만 게임사 입장에서는 모든 직업과 조합에 대해 같은 성능을 갖도록 밸런스를 맞춘다는건 불가능하기때문에, Path of Exile에서는 매 시즌마다 가장 사기적인 조합이 1개~2개정도만 존재하게 된다.

 

자본주의가 지구상에 나타난 지 수백년이 지났고, Fiat Money와 중앙은행이 주도하는 경제체제가 등장한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 게임에도 시간이 지날 수록 고인물이 등장했고 그들은 게임의 시스템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사기적인 세팅을 갖추고 있다. 자본주의 게임에서의 가장 사기적인 세팅은 꾸준한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무위험 자산을 보유하는 것이다. 수익률 2%짜리 미국 10년물 국채를 10억원어치만 보유하면 누워서 숨만 쉬어도 연간 2천만원의 현금흐름이 생긴다.

 

우리 모두는 자본주의 게임 내의 캐릭터들이다. 따라서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주의 게임에서 가장 사기적인 세팅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이 게임은 상당히 오래된 게임이라 무엇이 사기세팅인지, 어떻게 세팅하는지, 뭘 하면 되는지 모두가 알고 있다.

 

사기세팅은 아니지만 가장 사기에 근접한 세팅을 갖춘 사람은 중소규모 사업가들이다. 매달 꾸준한 사업소득을 창출한다. 하지만 여전히 사업을 굴리기 위해 발을 젓지 않으면 가라앉고 말것이다. 그래도 노동자들보다는 사정이 약간 낫다. 내가 가게를 비워도 알바생들이 일을 해준다.

 

사기세팅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은 노동자들이다. 매달 사용자와 계약된 노동소득을 얻지만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결코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육체와 시간을 착취해서 현금흐름을 창출한다. 이들의 현금흐름이 가진 리스크는 다음과 같다.

• 건강이 악화될 수 있다.
• 회사의 사업방향이 바뀐다든지 등의 이유로 잘릴 수 있다.
• 회사가 망하면 나도 함께 일자리를 잃는다.
• 정부정책 또는 법이 바뀌어서 내 소득이나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돼서 나의 임금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언제 날아갈 지 모르는 대단히 불안한 현금흐름이기 때문에, 사기세팅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전후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며 자연스럽게 자본주의 고인물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들은 생산활동을 하지 않고 소비활동도 줄이면서 사기세팅을 갖추려 노력한다. 지난 수십년간 이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기세팅을 갖추려 노력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무위험 자산에 대한 수요가 수익률 하락을 만들었다. 선진국 국채 수익률이 역사상 최저점에 도달했지만 아직도 그 수요는 대단히 높다.

 

앞으로 채권금리가 장기적으로 상승할 일이 있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과 무엇이 달라진걸까?